홈페이지온라인논문&투고심사회원가입뉴스레터이전호 제423호 2011년 5월 25일
 
 

전문가광장/오피니언

 
 

우리 모두 한가해집시다

 
 

민 상 렬 교수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부

 
 

마 전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졸업생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다. 얼굴 전체가 싱글벙글 이어서, 얼핏 보아도 너무 행복한 것 같아, 무슨 좋은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결혼 10년 만에 비로소 아빠가 되었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정말로 축하를 하면서, 10년 동안 아이 소식이 없어 걱정이 많았는데, 무슨 특별한 비결이 있었느냐고 물어보니, 답변인즉 아이 엄마가 직장을 잃어 많이 상심하고 있었는데, 전화위복으로 마음이 한가해지고 몸이 편해지니 아이가 저절로 들어선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도 엄마가 몸이 편하고 한가해져야 잉태되는 법인가 생각하면서, 그 몇 달 전에 가마타 히로키가 쓴 “세계를 움직인 과학의 고전들”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 책에서 이야기하는 정말로 위대한 업적들 뒤에는 항상 한가로움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혼자서 신기해 하였던 기억을 떠올렸다.

 

위대한 업적 뒤에 한가로움이 있었던 가장 좋은 예는 아인슈타인의 경우일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대학을 졸업하고 스위스 특허국의 말단 기술직으로 취직하게 된다. 그런데 그 자리는 정말로 한직이어서 오히려 그에게 좋은 기회가 된다. 한직에 있음으로써 누렸던 한가로움의 특권이 결국 한편 한편이 노벨상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는 “광양자설”, “브라운 운동이론”, “특수 상대성 이론” 세편의 논문을 “기적의 해” (Annus mirabilis)라고 불리우는 1905년에 한꺼번에 발표하는 쾌거를 이루게 하였다. 아인슈타인이 특허국 말단 기술자가 아니고, 유명한 대학의 교수로 취직되었다면 과연 이러한 위대한 업적이 가능하였을까를 생각해보면, 한가로움은 위대한 업적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아닌가 싶다. 그러한 한가로움이 있어야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고, 더 깊게 생각할 수 있어 위대한 업적이 가능해 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또 다른 예로서 다윈의 진화론이 있다. 다윈은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해군의 측량함 비글호에 승선하게 된다. 다윈은 이 항해를 통해 머나먼 남반구 땅까지 탐험하게 되고 거기에서의 관찰과 그 기간 동안의 연구를 바탕으로 훗날 “종의 기원”이라는 저서를 통해서 진화론을 완성시키게 된다. 기나긴 항해 기간 동안의 한가로움이 다윈으로 하여금 진화론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게 하는 원동력이었다고 필자는 깊게 믿고 있다. 그 밖에도 “멘델의 법칙”으로 유명한, 그리고 유전학의 기초를 확립한 멘델의 업적도 수도원에서 수도사로서 생활하는 데에 있어 주어지는 한가로움이 없었으면 결코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다. 뉴턴의 경우에도 케임브리지 대학교 재학시절 영국을 휩쓴 페스트를 피해 고향에서 1년반 정도 머무는 동안 지금 우리가 “뉴톤의 운동 법칙”, “만유인력의 법칙”이라 부르는 고전물리학의 뼈대가 되는 이론을 잉태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외국의 예를 굳이 들 필요도 없이, 우리나라에서도 다산 정약용의 예가 있다. 다산은 정조 사후 18년간의 긴 유배생활 동안 다양한 분야의 학문 연구에 힘써 500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다. 만약 다산의 이러한 유배생활 동안의 한가로움이 없었으면 과연 그 많은 책을 저술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다산의 유배생활이 고맙기도 하다.

 

지금 필자를 포함하여 대학교수의 생활은 어떠한가? 교육과 연구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학과 운영과 관련된 다양한 잡무, 사회봉사활동 기타 등등으로 한가로움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한 분야에서 큰 획을 긋는 업적을 “잉태”하는 것은 거의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처음은 많이 어렵겠지만 일주일에 하루는 모든 일정에서 자유로운, 연구실에서 두문불출하는 “연구일”을 가져보자. 그리고, 일년에 한달 정도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연구달”도 가져보자. 마지막으로, 연구년을 연구년답게 보내보자. 일상적인 교육과 연구를 접고, 오랜 기간 동안 느껴보지 못한 한가로움을 마음껏 즐겨보자. 그러다 보면, 위대한 생각, 훌륭한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