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온라인논문&투고심사회원가입뉴스레터이전호 제510호 2014년 1월 2일
 
 

전문가광장/오피니언

 
 

컴퓨터공학은 위기인가?

 

장 병 탁 교수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부

 
 

컴퓨터공학은 정체성이 있는가? 컴퓨터공학과의 졸업생이 사회에 진출하여 제대로 대우받고 있는가? 컴퓨터공학자들이 스스로 학문분야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는가? 컴퓨터공학이 소프트웨어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소프트웨어가 미래 국가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는가? 위의 5개의 질문에 대해서 모두 “Yes”라고 대부분의 사람이 대답한다면 컴퓨터공학은 위기가 아니다. 그러나 만약 많은 사람들이 세 개 이상의 질문에 대해서 “No”라고 대답한다면 컴퓨터공학은 분명 위기 의식을 느껴야 할 것이다. 만약 지금이 컴퓨터공학의 위기라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인가?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기계공학, 화학공학, 전기공학 등과 비교하여 볼 때 컴퓨터공학은 불과 50년도 채 되지않는 젊은 학문 분야이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비해서 최근30년 동안 컴퓨터공학이 과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한 바는 참으로 크다. 적어도 미국 등 일찌기 정보산업혁명을 시작한 선진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편 컴퓨터공학이 독립된 학문 분야와 전공으로서 얼마만큼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 산업과 경제 발전에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삼성, LG, 현대 등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Google, Amazon, Facebook등과 같은 세계적인 소프트웨어기업을 배출하지는 못하였다. 컴퓨터공학의 역할은 이러한 소프트웨어 기업이 등장할 수 있는 과학기술적 기반을 제공하고 우수 인력을 양성하는 데 있다.

 

컴퓨터공학은 국내에서 과연 얼마만큼의 정체성을 인정받고 있는가? 물론 컴퓨터공학을 교육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의 생각에는 잘 정립된 연구분야와 교과과정 및 교육방침 등 학문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시각에서 컴퓨터공학이 학문적으로, 과학기술적으로, 사회경제적으로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도 중요하다.학문적 정체성에 대한 사회의 평가를 간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얼마나 우수한 학생들이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자 하는지이다. 아직도 많은 일반인들이 전기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을 잘 구별조차하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전기공학과에 가서도 소프트웨어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오해하고 있다.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여 더욱 우수한 연구자를 길러내는것은 컴퓨터공학의 정체성 유지와 장기적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서는 먼저 컴퓨터공학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전공자 스스로가 자긍심을 느끼며 연구하고 교육하고 직업에 종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느끼지 못해서야 어떻게 다른 분야의 사람들에게 컴퓨터공학의 중요성을 역설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지난 15여년 동안인지과학, 뇌과학, 생물정보학 프로그램을 통해서 다른 학문 분야의 사람들과 학제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이에 대해 토론하는 기회를 많이 가졌다. 이를 통해서 한가지 배운 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학부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전공을 처음 시작하는 학생들은 아직 사고가 유연하며, 이들에게 컴퓨터공학과 소프트웨어에 대한 개념과 비전을 심어 주는“학문적 정신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심화된 전공 지식과 도구를 가르쳐 주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 내가 만난 많은 물리학자들이(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세상의 복잡한 현상을 물리의 근본 법칙으로 밝힐 수 있다고 믿고 이를 통해서 학문분야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것이 거의 Brainwash 또는 종교적인 경지에까지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마도 오랜학문의 역사를 통해서 축적되고 체계화된 물리학의 교육체계에 있는 것 같다. 컴퓨터공학자들은 어떤가? 컴퓨터공학이국가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기술이라고 믿고 그 비전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하는가를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정체성을 갖는 컴퓨터공학자의소양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몇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첫째, 흥미를 유발하고 창의성을 촉진하는 교육을 하여야 한다. 모든 것을 가르쳐 주려고 하기 보다는 교육에 재미의 요소를 넣어서 흥미를 유발시켜 스스로 공부하도록 유도하는 교과 내용과 커리큘럼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면 재미있는 연구주제가 많이 있고 무한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만족시켜 주는 기초 교육을 더욱 강화하여야 한다. 재미있는 문제를 푸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를 푸는 방법이 컴퓨터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과는 차별화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어야 한다. 바로 이점이 독립적인 학문 분야로서의 정체성과 자긍심 및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근본 요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컴퓨터공학의 특성상 풀어야 할 문제의 특성이 응용 분야마다 달라질 수 있고 시대가 감에 따라서 도구도 달라지는 점을 감안할 때 기초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셋째, Application-driven Basic Research 즉 응용을 염두에 둔 기초연구를 수행하는 것이다. 산업체 현장의 실제적인 문제를 다루되 그 해결 방법은 컴퓨터공학적이어야 한다. 지적인 호기심의 문제를 학문적으로만 해결하거나 산업체의 응용 문제를 산업체적 방식으로만 접근하기 보다는 산업체의 문제를 학문적으로 접근함으로써 그 결과가 산업체의 현장에 폭넓게 적용될 수 있어 파급효과를 높일 수 있도록 그 연구 주제와 연구 방법을 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서 학교에서는 기초연구를 하되 산업적 활용가능성이 있는 연구를 하여야 하며 산업적으로 의미있는 문제를 해결하되 새로운 해결책을 찾는 학문적인 기여가 있는 연구를 하여야 한다.

 

넷째, 새로운 도전과 비전을 제시하는 응용 연구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데에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컴퓨터공학과 관련 산업이 끊임없이 지속적인 성장을 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 하였다.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는 연구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이러한 도전에 응전하고자 하는 우수인력들이 모이고 이들을 더욱 더 세계 수준으로 교육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

 

다섯째, 정체성을 잃지 않되 과감한 변화를 허용함으로써 끊임없이 진화하는 학문분야가 되어야 한다. 다른 모든 분야에서는 학문 분야의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해서 새로운 연구 주제를 정신없이 탐색하고 있는데 컴퓨터공학은 유독 이러한 외부 환경에 별로 민감한 것 같지 않다. 생물체의 진화를 보면 주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생명체들은 언젠가는 도퇴되고 기업체들의 흥망성쇄사를 보아도 그렇다. 한편으로 변화하는 환경의 문제만을 뒤쫓아 간다면 이것도 답이 아니다. 컴퓨터공학의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바로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어떻게 하면 컴퓨터공학이 위기를 극복하고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은 컴퓨터공학의 학문적 형격인 타 공학 분야에서 찾을 수 있다. 기계공학은 이미 오래전에 자동차 엔진 설계를 위한 유체역학 대신에 생체세포 조절을 위한 미세유체역학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화학공학은 정유소 건설을 위한 화학반응기 대신에 나노물질을 합성하기 위한 분자화학반응기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컴퓨터공학은 디지털 컴퓨터용 알고리즘 대신에 뇌를 닮은 뉴럴컴퓨터 알고리즘과 같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여야 하는 것이다. 또한 빅데이터, 클라우드, IoT, 웨어러블 컴퓨팅과 같은 새로운 환경을 맞이해서 기존의 프로그래밍 중심의 소프트웨어 설계 방식에서 탈피하여 데이터기반의 새로운 소프트웨어 설계 방식과 같은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어 내고 이를 통해 새로운 서비스와 신산업을 창출하려는 노력을 경주하여야 한다.

 

원래의 질문 ‘컴퓨터공학은 위기인가’로 돌아가자면, 나는 우리가 현재 큰 위기에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컴퓨터공학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구성원들간에 이를 공유하며, 기초가 튼튼하고 자긍심을 가지는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고, 이를 통해 과학기술과 산업경제 발전에 공헌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을 권리를 확실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과학이나 타 공학 분야와의 경쟁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업적평가에 대한 불공평성 등에 대해서도 소프트웨어 기술과 학문의 특성을 감안하여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목소리는 컴퓨터공학과 소프트웨어 기술 및 인력이 그 정체성을 갖고 국가 과학기술과 산업경제 발전에 이바지하였다는 것을 인정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질 수 있을 것이다.